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만지로 (문단 편집) === 표류와 구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orishima.jpg|width=100%]]}}} || || {{{-1 {{{#ffffff ▲ '''존 만지로와 4형제의 표류를 그린 동상'''}}}}}} || 존 만지로는 [[도사 번]] 출신으로, 1827년 1월 27일 가난한 집안에 [[차남|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농어업을 하던 평범한 [[평민]] 집안이었다. 가난한 집이라 [[서당]]인 테라코야(寺子屋)에도 다니지 못하고 글씨도 거의 못 썼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즐기고 마는 타고난 [[상상력]]을 지녔던 모양인데, 이런 자질은 그의 큰 장점이 됐다. 아홉 살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아주 작은 [[논]]을 소작하여 [[벼]][[이삭]]이 여물지 않아 푸를 무렵에 찧어와서 [[맷돌]]에 돌려 가루내어 자식들에게 먹였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장남]] 토키조는 선천적으로 병약해서 [[어부]]가 될 가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마저 병이 들자 차남인 만지로가 대신 허드렛일을 하며 집을 지탱했다. 불과 10세 때부터 토지의 노역을 하며 이마즈 가문의 허드렛일을 하게 됐다. 만지로의 주된 일은 [[장작]] 패기, 쌀 찧기,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는데, 연말이 되면 하루에 몇 가마니씩의 쌀 찧기를 맡게 되어 어린 만지로에게는 중노동이었다. 그런 때에, 쌀 찧기 건으로, 이마즈가의 주인과의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한다. 그러던 차에 인근 항구에 입항해 화물을 나르던 타카오카군(高岡郡) 우사우라(宇佐浦)의 어선을 만나 사정을 털어놓았다. 이후 이 어선의 어부 [[견습]]으로서 탑승하게 되었다. 본래라면 평범한 [[어부]]로 생을 마감해야 할 신분이었지만, 14세 때 새벽에 우사우라에 [[전갱이]]와 [[고등어]]를 잡으러 왔다가 조난당하며,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면서 그의 삶은 크게 바뀐다. [[1841년]] 1월 5일, 그의 나이 14살 때 같이 일하던 다른 형제 4명[* 37세의 큰형 히츠노죠(筆之丞), 26세의 둘째형 토라에몬(寅右衛門), 25세의 셋째형 시게스케(重助), 16세의 넷째형 고에몬(五右衛門)]과 아시즈리미사키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러 나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5일간 [[표류]][* 자료에 따라 10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를 한다. 이때 이들이 탄 배는 4간(間) 한 자(약 7.5m), 노 2정을 세운 천마선(天馬船)으로 쌀 두 말 남짓한 식량과 약간의 장작과 물이 실려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일본은 [[쇄국]] 정책을 폈기 때문에 막부가 어선이나 상선의 크기, 형태, 장비 등을 제한해 외양을 항해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폭풍우를 만난 만지로 등 5명이 탄 작은 어선은 갑자기 북서풍에 휩쓸려 표류하다 [[무인도]]인 [[토리시마(하치조 지청)|토리시마]]에 표류한것이다. 폭풍 때문에 노를 꺾어 항행이 곤란해진 배는 아시즈리곶 앞바다에서 표류해 하룻밤 사이에 무로토 앞바다까지 떠내려갔다. 게다가 강풍에 펄럭이며 [[기이]] 앞바다를 지나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그대로 주체할 수 없이 [[태평양]]으로 떠내려간다. 출발할 때 싣고 온 쌀(약 38kg)을 먹고 생선을 먹어 허기를 달래고 빗물을 모아 식수로 만들어서 먹었다. 이후 표류한 지 5일이 지난 낮 무렵 동남쪽 해상에서 섬을 발견하게 되며, 모두 힘을 다해 섬에 접근한다. 저녁 무렵 섬에서 200m 거리(배 포함)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다. 이들은 일본에서 남쪽으로 750km 떨어진 '[[토리시마(하치조 지청)|토리시마]][* 만지로가 표착한 곳은 [[활화산]]인 [[토리시마(하치조 지청)|토리시마]]라는 것은 윗필드 선장의 항해일지에서도 드러난다. 섬의 위도, 30도 31분 북쪽, 경도는 이틀전의 일지에 '동경 140도 31분'이라고 되어 있으니 토리시마임에 틀림없다.](鳥島)'라는 이름의 '''[[무인도]]에 표착'''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모두 피곤하지만 상륙해 먹을 것과 물을 구하러 섬 안을 산책한다. 섬 둘레는 약 8.5km, 산 정상에는 [[분화구]]가 있고 [[용암]] 자국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또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는 새인 [[알바트로스]]가 서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산책을 계속해 근처에서 [[동굴]]을 발견한다. 동굴은 다섯 사람이 생활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제법 따뜻하여 우로(雨露)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문제는 식수도 식량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불도 없고, 곡식도 없고, 약간의 유수(留水)와 [[해초]], 바닷새를 잡아먹는 등 혹독한 무인도 생활을 했다. 이들은 여기서 물고기와 [[알바트로스]][* [[알바트로스]]의 번식지였기 때문에 이곳은 '새섬'이라고 불렸다. 만지로와 동료들은 이 섬에서 알바트로스의 고기와 달걀을 먹으며 140일 이상이나 생존 생활을 했다.]를 잡아먹고 빗물을 마시는 등의 방법으로 143일을 연명했다. 이들이 143일 동안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섬의 많았던 알바트로스 덕분이다. 이것은 [[해초]], [[어패류]]와 함께, 둘도 없는 영양원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음료수]]의 확보였다. 60~70일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스스로의 [[소변]]을 손에 쥐고 먹고 살았다. 또 다른 일화로는 벼랑을 올라가면 두 개의 오래된 무덤같은 것이 있었는데 돌무더기를 치우면 빗물이 고인 우물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옆에는 새도 있어서 12마리를 잡아 죽여 식량으로 삼았다. 그렇게 최대의 위기를 넘긴 만지로 일행은 그 무덤에 염불 한 변을 외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Je3cSYX5vy4, height=150)]}}} || || {{{-1 {{{#ffffff ▲ '''만지로의 표류와 구조 과정을 설명한 영상'''}}}}}} || >일요일(1841년) 6월 27일(음력 5월 9일). 동남쪽의 미풍. 섬 그림자가 있다. 오후 한시에 두 보트로 [[거북이]](수프용)가 있는지 보기 위해 내려온다. 다섯 명의 초라한 피곤한 인간을 발견. 데려오지만 그들이 배고프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 >― 윌리엄 H. 윗필드(William H. Whitfield)의 항해 일지[[http://www.tosa-jin.com/john/john.htm|#]]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동남쪽에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도사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범선]]이었다. 배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큰 선체의 돛이 여러 개 달려있었다. 모두들 춤을 추고 기뻐하며 두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배는 5명을 모른 채 그대로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오후 한시 즈음에, 아침에 본 배가 다시 섬에 다가온다. 만지로와 동료들은 한참을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배가 앞바다에 딱 멈추고 큰 범선에서 조각배 두 척이 내려졌다. 두 척 모두 돛을 달고 대여섯 명의 큰 사내들이 노를 저으며 섬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만지로 일행을 눈치챈 조각배는 돛을 저며 바위틈을 누비듯 다가온다. 별난 복장의 이인이었으면 [[흑인|얼굴이 새까만 이인]]도 있고 수염도 나고 덩치가 큰 이인들을 처음에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인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고 한다. 만지로 일행은 바다로 뛰어들어 쪽배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자 상대의 작은 배로 끌어올려 주었다고 한다. 선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명은 선장실로 안내되었다. [[가구]]도 [[도구]]도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이 보여준 지도를 보고 일본이 작은 나라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만지로 일행은 근처를 지나가던 '''[[미국]]의 [[포경선]] 존 하울랜드(John Howland) 호에게 143일만에 구조'''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01_jyonman_img01.gif|width=100%]]}}} || || {{{-1 {{{#ffffff ▲ '''존 홀랜드 호에 구조돼 무인도에서부터 호놀룰루, 괌을 거쳐 다시 무인도 부근으로 가는 항로(하늘색) [br]▲ 무인도 부근에서 산리쿠 앞바다를 거쳐 호놀룰루에 입항하지 못하고 타히티, 피지, 괌을 거쳐 페어헤븐에 이르는 항로. 만지로가 페어헤븐 도달 당시의 합중국 여러 주.(남색) '''}}}}}} || 만지로 일행이 구조됐을 당시 배의 [[의사]]가 "[[합장]]하거나 [[절]]하는 나라 사람이냐"고 몸짓으로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https://trillion-3934p.hatenablog.com/entry/2020/03/29/121620|#]] 당시 만지로 일행은 반쯤 벗겨졌고 너덜너덜한 [[기모노]]를 입은 채, 길고 건조하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생기가 없는 얼굴이 반쯤 가려진 채, 오랜 배고픔과 노출로 유령처럼 수척해 있었다고 한다. 윗필드 선장 앞으로 데려왔을 때, 그들 중 일부는 서 있지 못하고 갑판 위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https://www.americanheritage.com/man-who-discovered-america#2|#]] 만지로 일행을 구조한 존 하울랜드호의 선장 윌리엄 윗필드를 비롯한 선원들은 만지로 일행에게 호의적이었다. 다만 당초 선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조난자 처리에 당혹스러워 했다. [[태평양]] 한복판 배 안에서 오랫동안 의사소통이 안 되는 5명의 식량과 물 확보를 걱정했다. 사나운 뱃사람과 사소한 말썽도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장은 이들에게 일을 맡겼다. [[갑판]] 청소, [[소]]나 [[돼지]] 돌보기 등의 일이었지만 다들 열심히 일했다. 특히 무엇이든 민첩하게 다루는 만지로에게는 선원들도 호의적이었다. 존 하울랜드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만지로들에게는 친절하고, 몸짓과 손짓으로 말을 걸어오는 쾌활하고 친근한 사람들이었다. 만지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귀담아 듣고, 배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시 만지로의 담당 일은 갑판 청소와 선장의 뒷바라지가 주된 일이었지만, 지원해서 [[고래잡이]] 일도 배워 갔다. 포경선인 존 하울랜드호는 만지로 일행 5명을 구출한 뒤에도 포경을 하면서 항해를 계속한다. 그러나 만지로와 동료들은 구조됐지만 감히 일본으로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일본은 [[쇄국]]체제였고, 그대로 귀국하면 만지로 일행은 [[사형]]을 포함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 또 당시 [[에도 막부]]에 의해 내려진 '이국선 타불령'에 의해 외국 선박이 일본에 쉽게 접근할 수 없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